지난번 회사의 기업가치에 이어 좀 더 얘기해 보려고 한다. 일반적으로 기업가치는 회사의 (주식 수)X(주식 가격)으로 정해진다. 회사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 것이다. 회사를 서로 사고팔 때에도 대략 이 가격을 기준으로 협상이 시작된다. 상장된 회사의 경우 모든 정보가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회사의 기업가치는 쉽게 계산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가총액이 높은 삼성전자는 2016년 8월 5일 기준, 약 220조 원의 가치로 평가되고 있다. 비상장회사의 경우에는 주식이 오픈 마켓(코스닥, 나스닥 같은)에서 거래되지 않는다. 이 경우에 기업가치는 전문가들의 여러 심사를 거쳐 결정하게 된다. 이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으므로, 보통 새로운 투자를 받기 전에 투자자의 지분율을 정하기 위해 수행한다. 비상장회사가 일반투자자에게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상장’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며, 이를 기업공개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이 과정에서 주식의 가격이 많이 오르기 때문에 상장과 동시에 기업가치는 폭등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의 기업가치와 회사의 자산가치는 다르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모든 자산을 판다고 해서 현재 기업가치인 220조 원을 만들 수는 없다. 이 차이가 기업의 미래가치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기업의 발전 가능성이 주식 가격에 반영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분기별 기업의 실적 발표가 이루어지면 주식 가격이 요동한다. 현재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과 기업가치의 차이가 매우 크다면, 많은 발전 가능성이 기업가치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테슬라의 경우 아직 이익도 내지 못하고 계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수십조 원의 기업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이는 전기차에 대한 미래가치가 주식에 반영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제조 생산업체의 미래가치보다, 서비스형 IT 업체들의 미래가치가 더 높게 평가받는다. (테슬라의 자동차는 보수적인 의미의 ‘탈 것’이라기보다 아이폰 같은 전자제품에 더 가깝다.)
이제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기업은 이 미래가치를 꾸준히 유지하고 싶어 한다. 그래야 투자를 계속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급변하는 지금의 세상에서 이를 유지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애플도 얼마 전부터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많은 대기업이 혁신을 외치고 있다. 이 과정을 매끄럽게 넘기지 못한 모토로라나 블랙베리, 야후를 보면, 아무리 큰 기업이더라도 회사가 망하는 것은 순식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기업은 안전할까?
지금의 대형 IT기업들은 모두 조그만 스타트업 형태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기업의 형태가 커지면, 세상의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구글은 사내벤처의 형식으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있고, 페이스북 역시 서로의 의사소통을 위해 오픈된 공간에서 시끌벅적 일한다. 마크 저커버그의 책상을 보면, 그냥 개발자들 사이에 있는 책상 하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혁신’이라는 것은 쉽지 않다! 3년 전의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을 생각해보라. 얼마나 달라졌는지.
이런 대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 하는 일은,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일이다. 2가지 형태의 스타트업을 인수하는데,
첫 번째는, 새로운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이다. 이 경우 스타트업을 인수함으로 새로운 기술을 훨씬 빠르게 기존의 서비스와 통합할 수 있다. 구글이 유튜브(YouTube)를 인수해 동영상 스트리밍 분야를 선점할 수 있었던 것은 두 기업 간 기술의 시너지 때문이었다. 구글은 알파고를 만든 DeepMind를 인수하여 인공지능 분야에도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스타트업을 인수하며 기술발전과 사업 확장을 이루고 있다. 요즘은 AI분야와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분야의 스타트업들을 공격적으로 인수하고 있다.
두 번째는, 나와 경쟁상대가 될 가능성이 있는 스타트업이다. 될성싶은 나무 미리부터 잘라둔다고 볼 수 있다. 페이스북은 자체 메신저가 있음에도 WhatsApp을 인수했다. 아마존은 Dipers.com이나 Zappos.com을 더 덩치가 커지기 전에 인수했다. 이런 스타트업을 구매하는데 드는 비용을 보면 천문학적이다. 정말 그 돈만큼의 가치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돈을 주고 사는 걸까? 이는 단순히 그 스타트업의 기술가치만을 평가해서 설명할 수 없다. 그 스타트업의 ‘미래가치’가 포함된 것이다. 그 회사가 더 성장하면, 결국 지금 선점하고 있는 시장을 빼앗길 가능성이 있고, 최악의 경우 시장의 대부분을 빼앗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그렇게 쉽게 일어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야후를 보자. 야후는 초창기 구글을 인수하려다 실패했다. 아마 구글이 이만큼 클 줄 알았다면 그때 제시했던 금액의 10배라도 주고 샀어야 한다. 야후는 페이스북 인수도 시도했었다. 너무 ‘기술가치’만을 평가했던 것은 아닐까. 결국, 야후는 48억 달러에 버라이즌에 매각되며 (전성기 기업가치의 4% 수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마디로 망했다. 아마존이 Barnes&Noble(당시 미국 서적 시장을 지배했던)을 누르고 성장했기에, 같은 방법으로 아마존을 누르고 성장하려는 많은 스타트업들을 아마존은 ‘기업인수’라는 방법으로 막고 있다.
요약하면, 지금의 대형 IT기업들은 작은 스타트업을 ‘쇼핑’하며 발전하고 있다. 각 회사는 이런 과정을 전담하는 팀이 따로 있다. 스타트업을 돌며, 새로운 기술을 듣고, 재정 상태를 파악하고, 직원들의 수준을 가늠하는 역할이다. 그리고 자기 회사와의 시너지를 고려해 종합적인 보고서를 작성한다. 평가 결과에 따라 회사를 인수할 수도 있고, 파트너십을 맺을 수도 있다. 이제 대형 IT기업들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있는 스타트업을 사서 발전한다.
한국의 기업들이 이런 기업환경에서 얼마나 버틸지는 모르겠다. 구글과 아마존도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고, 혁신하려고 노력하는데, 한국기업의 혁신은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듯하다. 현대자동차의 직원들은 12시-1시의 점심시간을 분 단위로 지켜야 하며, 출근길에 카페를 이용할 수 없다. 참고기사
근무기강 확립 차원이라고 하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경영진을 교체하지 않는 한 회사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듯 보인다. (자동차 회사는 10년 내로 전기차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아마도 그 중심에는 테슬라가 있을 것이고, 지금의 자동차 업체들은 체질 개선을 위해 죽을 듯 노력할 것이다. 자동차 회사와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 삼성전자는 OS를 자체 개발하려고 안드로이드 인수를 포기했다. 안드로이드가 먼저 제안했으니 거절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직원도 몇 명 되지 않는 회사를 거액을 주고 살 바에, 엔지니어들 굴리면 그까짓 거 금방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아마도 삼성이 OS를 개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기업 분위기는 스타트업을 인수하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고 통합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점차 개선되고 있는 듯 보이지만, 한국문화 특유의 폐쇄성이 글로벌 기업환경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급변하는 IT 환경에 대응하는 민첩성과 유연성이 떨어지고, 결국 도태되거나, 국내 시장에만 머무를 수밖에 없다. 지금의 삼성전자 하드웨어는 세계 최고지만,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크지 않다. 또한, 한국을 대표할만한 소프트웨어가 없는 상황에서의 하드웨어 기술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이런 상황을 한국 내부에서 느끼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언론사의 대형 고객이자 광고주이기 때문에 언론에서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를 내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연 매출과 같은 데이터가 아닌, 기업환경이나 분위기에 대한 기사는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기 더 힘들다. 그 회사 직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어느 회사도 자기 직원들에게 회사 상황 나쁘다는 설명을 구체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외국 상황을 보다 잘 아는 임정욱님의 블로그나 임백준님의 칼럼은 현실을 인식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한국ZDnet은 대표적인 친삼성 IT 언론이다. 임백준님도 삼성전자에 비판적인 칼럼을 썼다가 거절당한 경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