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수족관

둘째 딸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의 일이다. 엔젤만 증후군 아이들의 90%가 겪는다는 경기()가 처음 발현된 후 한 달이 지났을 때 였다. 아이는, 느리지만 나름의 속도에 맞춰 꾸준히 잘 자랐고 내가 받은 ‘장애’에 대한 충격도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지고 아물어 그 마저도 노련한 일상이 되었다.  나를 향해 웃어주는 아이의 천진하고 사랑스러운 미소는 이 보다 더 큰 행복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를 황홀하게 했다.

장애아의 엄마로 살아가는 삶이 몸에 익어 ‘이 정도면 앞으로도 거뜬하겠는데?’ 하는 긍정적인 거만함도 갖추었다. 그렇게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과 씩씩함으로 제법 잘 견뎌오던 때에 아이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엔젤만 아이들이 겪는 경기는 일반적인 열 경기와는 다르게 수 초 단위로 진행된다. 많게는 1분에 20번 이상씩 고꾸라졌다. 바닥에 머리를 찧는 일이 많아 하루종일 아이를 안고 있어야 했다.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이 들지 않아 결국 입원해야 했던 그 때, 내 심장은 다 졸아 붙어 바싹 말라 버린 것 같았다. 아마 그 날에 울었던 나의 울음이 그간 단어로만 보아오던 ‘오열’ 이었을 것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앞에서 어찌나 서럽고 간절했던지 나는 그렇게 매일 울었다.

초점 없이 늘어진 아이의 머리와 작은 몸에는 뇌파를 읽기 위한 장치들이 덕지덕지 붙어 자세를 바꿀 때마다 전선들이 엉키었다.  입원실은 어린이 간질 병동 복도 끝에 있었다. 복도에는 근심 가득한 부모들의 무거운 침묵과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섞여 우울하고 칙칙했다. 사실, 병원 복도는 밝은 톤의 아기자기한 그림들로 화사한 빛을 뿜고 있었는데 그런 색색들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나는 그 때 흑백 속에서 살았다.

퇴근 해 돌아온 남편이 아이를 봐 주는 잠깐의 짬이 아이와 내가 물리적으로 분리되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아이와 몸이 멀어질수록 나를 억누르던 죄책감과 앞선 걱정들이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나는 병원 주위를 산책했다. 병원 복도에 걸린 환우들의 그림들을 무심히 훑어보고 정원에서 겨울을 견디고 있는 나무들을 살피면서 삶이란 어느 누구에게도 녹록하지 않은 것이로구나,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산책하는 이 순간에도 우리 딸은 꼼빡꼼빡 경기를 하고 있겠구나하고 생각이 닿자 아찔한 자각이 서늘하게 등을 후려쳤다. 내가 옆에 있다한들 나을 것 하나 없는데도 마음은 늘 나를 재촉했다.

입원실은 4층이었다. 급한 마음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데 눈 앞에 스크린 같은 파란 수족관이 펼쳐 보였다. 이런 것이 여기에 있었던가. 입원 해 들어올 때엔 제정신이 아니었으므로 주변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수족관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환자들과 가족들, 병문안 온 방문객들을 맞으며 입원실과 엘리베이터 사이를 길게 가르고 있었다. 나는 잠시 얼떨떨해져서 수족관 앞에 우뚝 멈추었다. 세상의 소리가 차단된 웅웅한 푸른 물 속에서 여러 종의 열대어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그들과 나 사이의 아득한 이질감을 느끼며 애써 잊고 있던 삶의 고단함을 다시금 짊어지려는 찰나, 기진한 나의 눈에 휘청이는 물고기 한 마리가 띄었다. 가만 보니 그는 가슴 지느러미 하나가 잘려 나가고 없었다. 사연은 알 수 없으나 그의 장애는 정상들 속에서 더욱 선명해 보였다. 나는 수족관에 기대어진 소파에 아예 눌러 앉아 물고기의 움직임을 살폈다. 열을 지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다른 물고기들의 헤엄을 쫓아가느라 그의 헤엄은 애처롭고 가엾어 보였다. 그런데 계속 지켜보고 있다 보니 그의 헤엄은 오히려 투쟁적으로 보였다. 지지 않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가혹한 삶을 향한 치열한 의지 같아 보였다. 이리저리 휘청이고 밀려날 지언정 기어이 무리의 열에 닿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 닿으면 흩어지고 닿으면 또 흩어지는 무리들을 한번도 흘겨보지 않고 오로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여정에만 집중하는 그의 열심이 나를 감동시켰다.

장애 입은 물고기를 수족관에 넣은 것은 실수 였을까, 아니면 기획자의 계산된 의도였을까. 시작이야 어떻든 그의 존재가 내게 새 희망을 준 것만은 확실하다. 아이의 경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고 앞으로 기한도 없이 독한 약에 의존해야 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아이의 삶을 걱정하기 보다는 응원하는 엄마가 되어야 겠노라고 다짐했다. 수족관 밖에 선 내가 장애 입은 그 물고기가 듣든지 아니 듣든지 열심으로 응원하고 있었던 것처럼 내 삶과 아이의 삶을 바라보는 삶 바깥의 누군가가 우리를 열렬히 응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기에 내가 보여야 할 것은 주어진 삶에 대한 열심과 나머지 남은 하나의 지느러미에 대한 감사다.

퇴원하는 날 아침, 한 줌 쯤 더 가벼워진 아이를 안고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수족관으로 갔다.

” 아가야, 저것 좀 봐. 물고기야. 저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 좀 봐.”

초점 없는 아이가 그 물고기를 보았는지 확신은 없었지만 그 말을 들은 아이가 나를 향해 옅게 웃어 보였다. 그래, 우리 아가도 저 물고기처럼 열심히 살자. 우리 아가도 곧 저렇게 헤엄칠 수 있을거야. 엄마가 항상 옆에서 응원할게.

퇴원 길에 지나온 병원 복도가 색색의 환한 빛으로 우릴 배웅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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