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수 기증

인생을 살면서 이런 일을 겪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2004년 어느 날 골수 기증 희망 동의서를 작성한 후 7년 만에 연락이 왔다.
지난 2월 14일 나와 조직적합성항원이 일치하는 환자가 있다고.
비혈연 간 일치할 확률이 수만 분의 일이라는데.
이런 일이 나에게.
예전에 동의서를 제출했지만, 그땐 혈기 왕성한 청년이었고.
지금은 당장 급하게 해야 할 일도 많고, 가족에 아이까지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3-4일 정도의 시간을 드릴 테니 가족들과 충분히 상의하고 결정하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말했더니,
그 첫 마디가 “와..부럽다..” 였다..
(지금 생각하면 이 한마디는 나에게 많은 힘이 되었다.)
이런 흔치 않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와 좋은 일을 수 있게 된 것이 부럽다는 말이었다.

사실 당시에 나는 골수 기증이 정확히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잘 알지 못했다.
얼만큼의 시간이 필요하고, 얼마나 아픈 것인지.
이래저래 한참을 알아보고,
일단은 기증하기로 결정하였다.
학교 실험도 해야 하고, 예심 준비도 해야 하지만,
그래도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과 비교하면,
당연한 결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마음이 그리 강하지 못해서 조금씩 흔들리기도 했다.
1년 반 동안 하고 있는 실험이 이제 결과가 좀 나올까 말까 하고 있는데,
여기서 한 달 정도 쉬게 되면, 내 졸업은 언제가 되는 것인가.
나이에 대한 부담이 없는 건 아니라서 학업을 빨리 마치고 싶은데,
예상치 못한 복병이 생긴 것이다.

거기에 또.
나를 흔드는 또 한가지.
부모님들의 .반대.였다.
지금이 너에게 중요한 시기고, 부양가족도 있는데 꼭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

고민이 많았다.
실제 비혈연 간의 이식은 국내에서 1년에 400건 정도 된다고 한다.
항원일치자의 40%만이 실제 이식까지 가게 되고,
이런저런 이유로 중간에 마음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제 기증자는 언제든지 자신의 결정을 번복할 수 있다.)
마음에 확신이 강하지 않았지만, 기증에 동의하고 다음 안내를 받았다.
나에게 약물이 투여되는데, 약물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그리고 부작용들..
솔직히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겁이 났다.

이런 고민을 안고 있을 때,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다.


누가복음 10장 25절
율법사가 예수님께..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으리까?
예수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어 있느냐?
율법사: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하였습니다.
예수님: 옳다. 이를 행하라.
율법사: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이오니까?
예수님: 착한 사마리아인의 대한 이야기를 하신다. (강도 만난 사람이 쓰러져 있는데,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냥 지나쳐 가고, 사마리아인이 도와 준다는 이야기다.)
예수님: 누가 네 이웃이겠느냐?
율법사: 자비를 베푼자입니다.
예수님: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내가 하고 있는 고민에 대한 정답이었다.
내가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하고 실험을 하고 있는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너무 달리기만 해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한 번 점검해야 할 때가 되었나보다.
하고 있는 실험들을 멈추고 잠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정말로..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이걸 그냥 지나간다면,
나는 강도 만난 사람을 두고 간 제사장과 레위인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이로써 고민이 말끔히 해결되었다.

감사하게도 그 이후로 즐거운 마음으로 이 과정을 기다릴 수 있었고,
항원 일치 적합성 정밀 검사도 100% 일치 판정이 나왔고,
내 건강 검진에도 문제가 없었고,
최종 기증까지 올 수 있게 되었다.

약물 투여를 시작했다..
기증은 며칠 후에 입원해서 진행되고, 그 전에 매일 약물 투여를 계속해야 한다.
오늘 병원에서 주사 2방 맞았는데…따.끔.했.다.
맞는 순간에는 이걸 앞으로 몇 방을 더 맞아야 되는거야 이런 생각했다.
둘째 날부터는 심한 두통과 요통이 동반된다고 하는데.
안 아팠으면 좋겠다. ㅜㅜ

골수는 조혈모세포라고 하고..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이 만들어지는 어머니 세포 정도라고 한다.
백혈병의 약물치료가 실패했을 때, 시도할 수 있는 마지막 시도라고.
기증자에 대한 안내문에 이런 문구가 있다.

환자는 이식을 받기 2주 전부터 전처치에 들어갑니다. 이 치료는 골수 이식 후 발생하는 거부반응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골수의 생착을 돕기 위해 평소보다 5배에 달하는 고단위 방사선요법과 고농도의 항암치료를 받게 됩니다. 혹시라도 이 기간에 기증을 포기하시게 되면, 환자는 사망하게 됩니다.

기증 시점이 거의 다 되어서, 내가 기증을 포기하게 되면……..환자는 사망하게 된단다.
이 문구가 섬뜩했다.
게다가 나에게 포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게.
나로 인해..정말로 한 생명이 살고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엄청난 부담이다.
마치 2개의 생명을 지고 사는 느낌.
그러면서 여러 생각들이 들었다.
임신한 엄마의 부담도 이만큼일까?
십자가에 달리기 전의 예수님께서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학교는 약 2주간 쉬기로 했다.
지금은 용인 처가집이고, 여기서 2주 동안 지낼 듯하다.
몸 상태가 괜찮으면 서울에서 친구들도 좀 만나고 싶긴 하다.
몸이 어떨지 모르겠다.
나에게도 좋은 쉼의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One Comment

  1. 일단 멋진 결심에 박수를 드립니다.
    그냥 j1비자 검색하다가 들어와 본 곳에서 아주 멋진분을 만났네요~
    감사합니다.
    급성백혈병으로 돌아가신 아빠가 생각이 나서..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