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 박사

대학교 (Undergraduate School)

물리학과에는 대략 35명의 친구들이 모였다.
모두가 학창시절 아인슈타인이나 하이젠베르크의 전기를 읽고, 자연의 신비에 대해 공부를 더 심도 있게 해보고 싶어 모인 친구들이다.
물질의 근본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도 해보았고, 분자, 원자, 원자핵, 양성자, 중성자, 쿼크 등에 관심을 갖고 모든 물질의 기본 입자에 대한 지식도 어설프게나마 가지고들 있다.
70% 이상이 과학고등학교 출신들이고, 학창시절 물리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며, 대부분 물리경시대회 입상자들이다.
하지만 그렇게 열정과 꿈을 갖고 들어온 물리학과지만,
고전역학, 전자기학, 양자역학의 관문을 거치며, 25명 정도로 줄었다.
대략 10명의 친구들은 전자과, 기계과, 생물과 등으로 전과를 하거나 휴학을 했다.


대학원 (Graduate School)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의 절반 이상이 대학원에 진학했다.
같은 학교 대학원으로 올라간 친구들이 대부분이지만,
S대로 옮겨 대학원에 진학한 친구도 있고, 무려 저 멀리 우리나라 반대편에 있는 H대로 진학한 친구도 있다.
그 와중에 의학전문대로 진로를 바꾼 현명한 친구들도 있다.
어찌 되었건 다양한 모습으로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것만은 비슷하다.
대학원 생활은 인내심 테스트일지도 모른다.
과연 내가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을까 끊임없이 의심하지만, 특별히 다른 대안은 없다.
하루 하루, 한달 한달을 보아도 눈에 보이는 성과가 별로 없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는 소설이지만, 수필보다 현실적이다.


대학원 졸업 (Graduation, Finally Ph. D.)

6년간의 대학원 생활을 마치고 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운 좋게 졸업하자마자 미국으로 포닥으로 나간다.
일반 사람들에게 ‘박사’라는 타이틀이 대단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내 주위에는 온통 박사님들이라, 사실 조금 특별한 운전면허증 같은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인다.
더욱이 미국에서는 언어의 한계로 그마저도 안 되는 것 같다.
보통 ‘운전면허’를 ‘딴다’라고 말을 많이 한다.
이 바닥에서도 우리는 ‘박사’를 ‘딴다’라고 말을 많이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따는데 좀 더 오래 걸리는 운전면허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포닥 (Postdoctor)

멋있는 건물을 짓고 싶었다.
하지만 혼자 그런 건물을 짓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이제는 그 건물의 유리창 하나라도 제대로 끼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창문 조각 하나 들고, 이걸 어떻게 끼워야 하나 고민하는 중에도,
옆 사람은 무슨 재주를 가졌는지, 문짝도 착착 끼워 넣고 있고, 멋진 전등도 달고 있다.
이러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건 아닐까 생각이 더 많아진다.
내가 가진 똑같은 창문을 들고 어물쩍거리는 사람도 있는 걸 보아하니, 서두르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못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가끔씩 너무 급해서 부실한 재료를 끼워 넣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멋진 건물을 망치는 일 따위 하지 말아야지.
유리창 끼워 넣는 일이 나랑 안 맞는지, 문짝 다는 일로 바꿔볼까도 생각한다.
근데 비슷한 일인데 내가 뭐 특별하다고.
문짝도 상황이 비슷할 거 같다. 그렇다고 아주 다른 새로운 집으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난 지금까지 유리 조각 하나 들고 뭐 하고 있었나. 가만히 유리창을 바라보니 희미하게 비친 내 모습이 보인다.
‘너 참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입이 떨어지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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